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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유불선의 경전 - 도교의 경전

우촌k 2018. 12. 9. 21:08

도교의 경전

 

일반적으로 노자를 연원(淵源)으로 하여 장자(莊子)·열자(列子) 등이 중심이 되는 철학유파(流派)로서의 도가사상(Philosophical Taoism)과 황제(黃帝)와 노자(老子)를 교조로 삼은 중국의 종교형태인 도교(Taoism)는 구분하여 인식한다. 그러나 본고(本稿)의 목적이 ‘종교’의 경전에 한정하지 않고 사상(思想)으로서의 일체의 경(經)을 아우르며 선천문화의 상극적 한계를 고찰하는 데 있는바, 위진시대(魏晉時代)의 왕필(王弼)과 곽상(郭象) 등을 주로 하는 현학파(玄學派)와 명리학파(名理學派) 또한 넓은 의미의 도가로써 살펴보고자 한다.

 

노자와 석가모니를 동일 인물로 보는 노자화호설(老子化胡說)에 의하면 노자가 인도로 들어가 석가모니로서 화현(化現)하여 오랑캐(胡)를 교화하였으므로 불교와 도교는 그 연원(淵源)이 같다고 한다(同源論). 반면 삼성화현설(三聖化現說)은 부처가 유동(儒童)보살, 광정(光淨)보살, 마하가섭(摩訶迦葉)등 세 명의 제자를 중국으로 보내 각각 공자, 안회, 노자 등의 세 성인으로 화현시켰다고 주장한다. 사실, 두 성인의 탄생설화를 보면 ‘자두나무vs바라차나무’, ‘왼쪽겨드랑이에서 출생vs오른쪽옆구리에서 출생’, ‘아홉걸음vs일곱걸음’, ‘천상천하유독존(天上天下唯道尊)vs천상천하유아독존(天上天下唯我獨尊)’ 등 상당히 유사한 점을 발견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설화를 통하여 특정종교의 연원(淵源)이나 교설(敎說)을 부인하거나 그 경전을 위경(僞經)이라고 폄하한다면 그야말로 선천종교의 상극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노자의 『도덕경(道德經)』을 제외한 도교의 모든 경(經)이 불경(佛經)의 모방이라는 일방적인 주장은 받아들일 수 없다 할 것이다.

 

가. 철학유파로서의 도가사상(道家思想)

 

노자(老子)를 개조(開祖)로 하는 도가사상(道家思想)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연과 인간의 합일이다. 현실세계에 대한 보다 개인적이고 형이상학적(形而上學的)인 노자의 사상은 장자에게 계승․발전되어 이른바 노장사상(老莊思想)이라고 통칭하지만 장자의 독특한 사상적 특색과 문풍(文風)에 비추어 볼 때 노자와는 확연한 차이가 있다.

 

■ 노장사상(老莊思想)

 

노장사상(老莊思想)은 주(周)나라가 망하고 여러 나라가 서로 난립하던 춘추전국시대(BC 8세기∼BC 3세기)의 사회정치적 혼란기에 공자(孔子)의 유가(儒家)를 비롯한 제자백가(諸子百家)의 하나로서 노자에 의해 주창되었으며 무위(無爲)를 주된 사상으로 한다.

 

무위(無爲)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말이 아니다. 인위조작(人爲造作)된 형식(形式)과 가치(價値), 제도(制度)에서 벗어나 허무(虛無)를 근본으로 삼아 자연 그대로 무명의 상태로 돌아가자는 것이다. 이는 정명론(正名論)과 그에 마땅히 따르는 행동준칙으로서의 道를 주장하는 공자와 달리, 보다 더 근원적인 내적(內的) 모색을 통하여 인간이란 본래부터 자연의 일부에 불과한 불완전한 존재임을 자각하고 궁극적으로 모든 움직임을 자연에 맡겨 자아해탈(自我解脫)의 경지에 드는 ‘자연스러운 삶’을 추구하자는 것이다.

 

이와 같은 ‘자연스러운 삶’이란 우주만물의 본질인 무위자연(無爲自然)의 道를 본체로 삼고 겸양의 덕(德)을 쓰임새(用)로 하여 전체(全體)보다는 개체(個體)를, 통제(統制)보다는 방임(放任)을 강조하는 반지성적(反知性的) 사상이며, 인간정신과 가치철학(價値哲學)에 대한 회의론적(懷疑論的) 사상이기도 하다. 이에, 현재 저술과 편찬에 있어서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노자의 『도덕경(道德經)』과 『장자(莊子)』를 통하여 그 사상을 간략하게 살펴본다.

 

『도덕경(道德經)』

도가(道家)의 모든 이론적 기초를 세운 노자의 『도덕경』은 약 5,000자, 상하 2편으로 되어 있다. 성립연대와 저자에 관해서는 이설(異說)이 분분하나, 한 사람 또는 한 시대의 작품으로 보기는 어려우며 선진시대(先秦時代)의 『노자』로부터 한초(漢初)에 이르기까지의 도가사상을 남북조시대(南北朝時代)에 집적(集積)한 것으로 보는 것이 통설이다.

 

노자는 만물을 생성하고 지탱(支撐)하게 하는 항구불변이며 절대적인 근원적 존재가 도(道)이며 이러한 도에서 무위(無爲)의 이법(理法)으로 만물이 이루어지는 생래작용(生來作用)을 덕(德)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그 사상의 중심은 사회정치적 개혁을 목표로 하는 군주에 대한 지침이자 세속적인 성공을 위한 처세술의 성격이 강하다. 즉, 국가나 사회제도는 인간이 오로지 ‘잘 살기 위하여’ 인위적으로 마련한 것임에도 군주들이 무위자연의 가치를 망각한 채 인위적인 분별과 욕심으로 부국강병만 일삼아 성군(聖君)의 길에서 일탈한다고 비난하면서 거대한 통일제국보다는 소국과민(小國寡民;나라는 작고 백성이 적음)을 주장하였다. 또한 ‘무위(無爲)함이 무위함이 아니다’라는 역설(逆說)과 ‘상선약수(上善若水)’에서 보듯이 무위(無爲)의 술(術), 구체적으로는 겸양(謙讓), 포용(包容) 및 관조(觀照)를 통하여 일체의 욕구를 최소화하여 시시비비(是是非非)없는 신체적 장생과 공업(功業)을 자연스럽게 이루어야 한다고 설파하였다.

 

『장자(莊子)』

중국 전국시대(戰國時代·서기전 475~221) 도가(道家)의 대표적인 인물로서 노자(老子) 사상을 계승, 발전시켰으며 도교에서는 남화진인(南華眞人), 또는 남화노선(南華老仙)이라고도 불리는 장자(莊子)와 그의 제자들이 저술하고 편찬하였다. 우언우화(寓言寓話)로 엮어졌으며 내편(內編), 외편(外編), 잡편(雜編) 등 33편이 현존한다.

 

무위(無爲)에 대한 장자의 사상은 ‘절대무위(絶代無爲)’이다. 노자의 역설적(逆說的) 표현인 무위이무불위(無爲而無不爲) 즉, ‘하는 듯 안하는 듯’에 대하여 장자의 道는 이것과 저것의 대립이 사라지고, 세상에서 귀하고 천한 것의 구분이 없다는 만물일제(萬物一齊)의 사상으로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아내의 죽음에도 눈물짓지 않고 오히려 덩실거리며 춤을 춘 것은 생사를 초월한 절대적 자유를 추구하였다고 볼 수 있으며, 이는 상대적인 지식에 집착하지 않는 진리추구의 절대적 관점, 즉 장자가 말하는 대붕(大鵬)의 경지인 것이다.

 

사회정치적 개혁을 주장한 노자와는 달리, 道에서 만물이 운용되는 ‘운행과정’에 관심을 가지고 아예 정치체제 자체를 부정하는 장자는 개인의 생활과 본성의 보전을 최우선의 목표로 하였다. 내면의 인식론적 접근을 통하여 노자의 ‘신체적’ 장생에서 더 나아가 시비와 차별이 없는 평등한 상태이자 만물일체의 경지인 ‘제물(齊物)’을 지향하였으며 이러한 정신적 자유를 추구하는 방법으로써 인간의 감각과 의식을 불식하고 신체에 깃들인 영기(靈氣)에 의하여 만유(萬有)의 근본이법(根本理法)과 일체가 되는 ‘심재(心齋)’, 그리고 인간이 현세를 살기 위한 모든 조건들을 깨끗이 망각해 버리고 자연스럽게 존재의 근본이법과 일체가 되는 ‘좌망(坐忘)’을 주장하였다.

 

■ 진·한(秦漢) 이후 도가사상의 발전

 

노자와 장자에 의해 구체화된 도가사상은 3~4세기에 이르러 많은 변화를 한다. 위·진(魏晉)시대 현학(玄學)의 시조로 일컬어지는 왕필(王弼)은 현실의 모순을 해결하고자 노자(老子)의 무위자연(無爲自然)에 귀일한 『노자주(老子註)』에서 의(義)와 이(理)의 분석적·사변적(思辨的) 학풍을 창설하여 중세 관념철학인 송학(宋學)에 영향을 끼쳤다. 또한 곽상(郭象)은 장자(莊子)의 근본원리에 따라 자연(自然)을 중심개념으로 하는『장자주(莊子注)』를 서술하여 계층적 신분질서를 천리(天理)로 인정하면서 육조(六朝) 귀족제사회(貴族制社會)의 사상적 근거를 제공하였다.

 

그 외에도 열자(列子)는 숙명론적 자연주의를 주창하였으며, 2세기 중엽부터는 죽림칠현(竹林七賢)으로 대표되는 청담사조(淸談思潮)가 유행하여 '은둔'과 '청담'을 설파하면서 세속을 초월한 철학적, 예술적인 사유와 가치를 중시하였다. 이러한 사조는 6세기초까지 계속되어 11세기의 성리학의 발전에 기여하기도 하였다.

 

나. 종교로서의 도교(道敎)

 

이미 위에서 언급하였듯이 도가(道家)와 구별되는 도교(道敎)란 진·한(秦漢)시대의 신선방술(神仙方術)과 황로지학(黃老之學)을 전신(前身)으로 하여 애니미즘, 샤머니즘, 기타 민간신앙의 여러 요소들을 포함하는 종교적 의례를 갖춘 형태를 의미한다. 후한의 신흥 종교라고 할 수 있는 태평도(太平道)와 오두미도(五斗米道)가 초보적이나마 교리체계를 갖춘 최초의 교단이다.

태평도는 ‘황건적의 난’을 일으킨 장각(張角)이 후한(後漢) 간길(干吉, ‘우길;于吉’이라고도 함)의 가르침과 민간신앙 등을 종합하여 주창한 교단으로서 신비한 방술과 선행으로 장생불사를 이루고자 하였다. 한편, 오두미도는 장릉이 창교한 것으로, 장릉은 곡명산(鵠鳴山)에서 수도하며 직접 도서(道書) 24편을 짓고 신자를 모으면서 입교자(入敎者)로부터 다섯 말의 쌀을 받아 오두미도(五斗米道)라고 불렸다.

 

3~4세기에 이르러 오두미도는 일반 민중뿐만 아니라 상류 지식층에도 널리 전파되기 시작하면서 위백양(魏伯陽)과 갈홍(葛洪)에 의해 종교로서의 이론을 갖추기 시작하였고, 구겸지(寇謙之)는 불교의례(佛敎儀禮)를 대폭 채택하여 오두미도를 천사도(天師道)로 개칭함으로써 종교적인 교리와 조직이 비로소 정비되었다.

 

일반적으로 도교의 최초경전은 『태평경(太平經)』으로 보지만, 경전목록의 성격을 띠고 있는 것으로 최초의 것은 갈홍(葛洪)의 『포박자(抱朴子)』내편(內篇)이다. 또한 불교의 대장경(大藏經)에 상응하는 것으로서 명대(明代)에 480함5,305권의 도교경전을 수집한 정통도장(正統道藏)과 1607년, 장국상이 수집한 32함180권의 속도장(續道藏), 그리고 청대(淸代)에 편집된『도장집요道藏輯要』가 있다. 도장(道藏)의 내용을 분류하면 신부(神符:부적)·옥결(玉訣:秘試)·영도(靈圖:鬼神像)·보록(譜錄:敎法의 연혁)·계율(戒律:修道의 율법)·위의(威儀:齋戒 등의 의식)·방법(方法:귀신을 쫓는 術策)·중술(衆術·鍊丹類)·기전(紀傳:老子 등의 전기)·찬송(讚頌:神典의 偈)·표주(表奏:귀신에게 奏上하는 祈願文) 등으로 이루어졌다. 이에, 본고(本稿)에서는 태평경을 비롯한 몇몇 대표적인 도교의 경전을 살펴보기로 한다.

 

『태평경(太平經)』

태평경(太平經)의 본래 이름은『태평청령서(太平淸領書)』로서 우길(于吉)이 백화(帛和)노인을 만나 문둥병을 치유하고 얻었다는 ‘태평본문(太平本文)’에 그의 제자인 궁숭(宮嵩)과 함께 내용을 추가하여 170권으로 만들었으나 현존하는 것은 57권이다.

 

태평경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선악응보(善惡應報)와 장생술(長生術)이다. 즉, 현실세계에서 도덕적으로 선하게 살면 장수(長壽)하거나 시해(尸解) 또는 신선(神仙)이 되지만 도(道)와 덕(德), 인(仁)을 중심으로 한 전통적 가치관에 반하는 도덕적 타락은 황천의 뜻에 크게 거슬려 자주 병(病)이 들고 결국 오래 살 수 없으며 사후에 혼백 또한 심판을 받아 죄의 대가를 치르게 된다고 한다. 그러므로 여기에서 말하는 장생술이란 진시황이 찾고자 했던 불로장생의 약(藥), 즉 외단(外丹)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수련을 통하여 장생에 이르는 내단적(內丹的) 장생술을 일컫는 것이다.

 

이러한 내단적 장생술은 이른바 원기론(元氣論)과 수일법(守一法), 그리고 윤리적 실천으로 이어진다. 원기(元氣)란 만유(萬有)가 형성되기 전의 일종의 혼돈상태로서 그 자체의 본성이 선하므로 자연의 일부인 인간이 원초적으로 부여받은 원기 또한 선하다고 한다. 그러므로 선(善)의 수양으로서 우주와 인간의 본질이자 근원인 원기, 즉 일(一)를 지켜야 하며(守), 구체적으로는 자신이 범한 허물과 잘못을 뉘우쳐 반성하고 고쳐나감으로써 장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전통적인 신선방술과 달리 태평경은 개인적이고 은둔적인 구도(求道) 경향을 비판하면서 가족과 사회구성원을 저버리고 자신만이 장생하고자 함은 道에 반하는 것이며 결국, 장생에 이르지 못한다고 한다. 즉, 윤리적 실천 그 자체가 목적인 유가(儒家)와 달리 장생을 위하여 몸으로 행하는 실천적 방술로서의 도덕적 행위를 주장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포박자(抱朴子)

위진남북조(魏晉南北朝) 시대 도교의 전개에서 가장 중요한 사실은 앞선 태평도와 오두미도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신선(神仙)사상을 적극적으로 도입한 점이다. 동진(東晉)의 갈홍(葛洪)은 당시 민간에 널리 퍼져있던 무속신앙과 봉래산과 같은 선인세계에 대한 동경, 그리고 당시까지 전해 내려오던 도교문헌들을 참고하여 20권의 내편과 50권의 외편으로 구성된 『포박자(抱朴子)』를 저술하였다.

 

이렇게『포박자(抱朴子)』는 ‘신선불사(神仙不死)’의 사상을 바탕으로 황백(黃白)․금단(金丹)․복기(服氣)등의 불로장생의 선약(仙藥)의 제조 및 복약법(復藥法)에 관하여 소개하고 신선의 종류와 이에 이르는 단계적 수련방법 또한 서술하여 도교의 완전한 이론적 체계를 마련한 최초의 도교경전이다. 또한 당시까지 황제나 고위관료의 전유물이었던 신선술이 백성과 일반 지식인에게까지 자리잡게 된 것은 유교적 세계관에서 벗어나고자 하던 육조시대의 사대부의 풍조와도 관련이 있겠으나, 궁극적으로는 갈홍의 영향이라고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포박자(抱朴子)』에서 무엇보다도 강조하는 점은 신선이 되고자 하는 자는 선을 쌓고, 허물을 짓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유교적 윤리사상은 사대부(士大夫)인 갈홍으로서는 당연한 것이었던바, 그에 의하여 민간신앙의 신비주의와 지식인의 합리주의가 결합된 도교의 독특한 전통이 성립되었으며, 또한 노자(老子)를 신격화(神格化)하여 공자나 부처와 대등한 성인(聖人)이자 교조(敎祖)로서 신앙의 대상으로 삼게 되었다.

출처 : 대순진리회 유불선
글쓴이 : 해맑은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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