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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전통사상, 동학

우촌k 2022. 2. 9. 05:17

우리전통사상, 동학

 

 

1.동학과 불교사상

조선사회에 있어 억불숭유정책에 의해 불교는 유학자들의 비판대상이었다. 불교는 충과 효의 인간도리를 다하지 못하고 출가를 하기 때문에 또 면벽과 좌선을 일삼는 허무와 적멸의 도라고 생각했기에 유학자들은 불교를 배척한 것이다. 이에 불교는 그러한 성향에 치우친 예는 있어도 본래의 가르침은 결코 적멸의 도가 아님을 항변해 왔다. 또한 조선사회에서 민중반란에 승려가 빠진적이 없음을 근거로 수운은 성리학을 대체할 이념으로서 삼교를 동학안에 포함시켰고 특히 불교에 있어서는 사유와 민중성을 기존 계급체제를 대신하기 위한 이념으로서 동학에 녹아들었다고 볼수 있다. 동학이 불교적 면모를 지닌다는 것은 모든 만물이 하느님을 모시고 있고, 생명이 있어 평등하며 전체와 개체가 둘이 아닌 한울타리요 한울타리인 세계가 끊임없이 생성하고 개벽한다는 무궁한 이치에서 나온 말이다. 동학은 이를 불교적 용어를 통해 설명해 내고 있고 불교처럼 비실체적 본체를 보여 주어 다양성의 탈 근대적 사유를 나타내기도 한다.

동학이 불교적 사유를 보인다는 것은 다음의 세가지 의미가 있다.

첫째는 하느님을 인간 안에 끌어내리면서 만물에 하느님을 부여하여 개체와 전체를 통일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인간이 하느님이라는 것은 인간 개체가 곧 전체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는 불교 화엄에서 일즉다 다즉일의 회통을 보였던 것처럼 생명사상과 인간평등, 다양성의 존중,계급질서를 타파하는 변혁적 사고를 가능케 한다.

둘째는 유무회통으로써 모든 존재가 있음과 없음’,‘생겨남과 사라짐의 공존 속에서 상호관계의 존재임을 말하기에 모두가 하느님의 마음을 받들어 하늘의 동귀일체로 돌아가는 공동체 의식을 지향한다.

셋째는 동학에서 말하는 허령창창,공적활발,불연기연의 유무회통 사상은 어떠한 현상과 사물도 고정된 것으로보거나 집착하지 않고 끊임없이 변화.생성하는 무궁의 세계관을 지니게 하여 인간으로 하여금 창조 세계를 만들고자 하는 과정에 주목하게 한다.

동학의 인내천 사상을 전통 사상 속에서 살펴보면 보우가 말했던 인즉천을 빼놓을수 없다. 조선시대의 불교사상 자체가 유교와 무관할 수 없는 현실이었고 중국이나 조선 모두 유교가 통치이념으로 채택된 상황과 위기 속에서 불교는 성리학을 인용하여 불교가 다르지 않음을 강조하거나 삼교합일사상을 내놓았었다. 중국의 경우 쫑밀이 그 대표적인 경우이고 조선에서는 득통기화나 허응당 보우등이 대표적이다. 허응보우는 조선 중기에 억불정책이 지속되던 유가 정치에서 일시나마 불교를 부흥시킨 인물로서 인즉천과 삼교일치 사상을 나타냈다. 그는 도교와 불교가 한갓 허무만 일삼아서 도리의 작용이 본체의 작용임을 알지 못하였음을 비판하고 반대로 유교가 인의.충서만을 높이 숭상하여 형식화한 나머지 집착되어 그것이 진공.적멸의 작용임을 알지 못하였다고 주장했다. 본체는 비어서 스스로 신령하고 작용은 현현하면서도 자취가 없고 음양과 사시에 행하면서 잠시도 쉬지 않는다는 것은 수운의 심본허 응물무적하는 하느님과 상통하는 것으로 보인다. 또 그는 음양 사시가 곧 법성으로 부처의 몸이요 모두가 구국의 진리라고 하였는데 이는 유가 용어를 통해 불교 세계관을 담고 있다. 이는 수운이 음양이 귀신이요, 귀신이 곧 상제라고 했던 맥락을 이해할수 있는 단서가 된다.

불교에서 삼교합일의 회통사유가 나올수 있었던 것은 이러한 화엄의 사유체계에서 비롯된다. 본체와 현상이 상즉할수 있기에 유가에서 말하는 사시와 음양도 하느님이지 부처의 몸이라고 할수 있는 것이다. 여기서 바로 인즉천의 개념이 형성돌수 있는것이며 동학에 있어서는 인내천,사사천,물물천의 시천주가 될수 있었다. 다시 말해서 유불의 본체적 결합이 일어난 것이다. 보우가 말한 인즉천은 곧 심즉천으로 불교의 일심과 유교의 천이 결합되어 새롭게 세계관이 제시 된 것이다. 그러므로 일심은 태극이요 음양은 귀신이며 귀신은 곧 하느님으로 일심과 하느님은 다르지 않게 된다.보우는 이러한 입장에서 그의 일정론을 통해 인즉천을 구체적으로 전개하고 있다. 이는 분명 유가의 사유를 불교 안에서 히통시킨 사유이다. 유가의 본체인 천리와 불가의 본체인 마음이 회통하는 것이다. 인간 마음이 불성이라는 불교의 입장은 유가적 사유를 수용하여 인간 마음은 곧 하늘이요 하늘이 곧 인간이며 인간의 마음과 기운은 하늘의 마음과 기운이 된다고 말할수 있다.

 

인간 마음이 곧 한울님이라고 하는 것은 분명 불교적 전통의 수용이라 할 것이다. 또한 동학에는 불교나 도가에서 말하는 공[] 개념이 있다. 해월은 무가 유를 낳고 유가 무를 낳으며 무에서 생성이 이루어지고 형체가 생긴다고 말했다. 특히 의암은 수운이 말한 무왕불복의 한울님을 무형유적.공적활발로 명명한다. 이는 선불교 선사들도 말한바 있지만 동학은 특히 활발성을 강조한다. 동학은 불교가 자칫 허무적멸로 들어갈 수 있는 폐단을 성찰하여 무 자체에 주목하기보다 무에 의해 생성변화되는 한울세계에 주목하고 있는 것이다. 바로 이런점에서 동학의 생명적 사유는 불교와 다른 독자성을 보인다.

 

2.동학과 유학사상

동학과유학을 단절적으로만 파악하는 것은 정당하지 못하다. 동학에는 유학에 대한 계승과 극복, 긍정과 부정의 요소가 모두 있기 때문이다. 그런 관점에서 논자는 유학의 현실적 역할에서 기인한 부정적 양상을 극복하고 본래의 이론적 지향을 실제로 구현한 것이 곧 동학이라고 본다.

유학과 동학을 이처럼 연속성 속에서 파악할 수 있는 근거는 도덕중심주의라는 공통점이다. 즉 유학과 동학은 인간을 도덕 주체로 이해하고 도덕적 본성의 실천과 구현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대체적인 동질성을 지니고 있다. 동학은 이러한 동질성을 공유하면서 유학의 사유 형식과 내용을 수정함으로써 유학적 이상을 현실 속에서 구현할 수 있었다.

우선 동학은 주자학의 존재론인 이기이원론을 기일원론으로 수정함으로써 동학 고유의 신관과 인간관 그리고 수양이론을 제시하게 된다. 이 존재론적 전환이 지니는 의의는 이것으로 인해 존재론적 위계가 부정되고 모든 사물의 일체적 평등의 근거가 마련된다는 점이다. 유학에서 이와 기로 표상되는 존재로적 위계는 바로 사회적 관계의 불평등을 정당화하는 이론적 근거이기 때문이다. 기일원론은 이의 우월성을 부정함으로써 사회적 불평등과 차별을 부정하고 나아가 동일한 기의 공유에 근거해 인간을 포함한 만물의 평등을 주장하게 된다.

둘째, 동학은 유학의 천인합일사상에 대한 수정을 통해 생명이 생겨낙 자라는 과정에서 하늘과 사람이 지속적인 일체의 관계에 있음을 강조한다. 즉 시천주의 천인합일 사유에서는 일기의 내재에 근거해 사람과 하늘의 일체성을 강조하는 동시에 일기인 하늘이 밖에서도 여전히 기화로 작용하면서 개체와 교섭하고 있음을 말하고 있다.

셋째, 동학은 이론과 현실이 괴리된 유학의 인간 평등사사을 수정한다. 유학이 도덕적 본성의 보편성을 인정하면서도 사회적 계급을 인정하고 남녀의 차등 및 어린아이에 대한 비하등을 용인하는 것은 이론적 이사이 현실 속에서 좌절된 예라고 할 수 있다. 동학에서는 시천주 사상을 통해 이를 넘어서고 도덕적 본성의 보편성이라는 인간 이해를 실천에서 관철시키게 된다.

넷째, 동학은 타율적 강제로 전락한 유학의 규범과 어렵고 오랜시간을 필요로 하는 수양법에 대해 시천주에 근거해 도덕 인격실현의 거점을 내면에 설정함으로써 도덕적 자율성을 강화하는 한편 자신의 시천주성에 대한 확신과 깨달음을 핵심으로 하는 간이하고도 대중적인 수양법을 제시한다.

이상의 논의를 통해 동학은 유학적 지향과 구상의 완성형이다. 그것은 유학이 지향했던 궁극적인 이상의 실현을 동학에서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즉 유학에서 이론적 천명이나 불완전한 구현의 차원에 머물 수밖에 없었던 인간존중과 만인 평등사상의 근대적 구현이자 완성이 바로 동학인 것이다.

 

3.동학과 도교사상

수운 최제우가 주장하는 생성론은 천도가 먼저 있고, 이 천도가 형이상이라면 '()'와 인()'은 형이하이다. '()''()'가 상응해서 8괘가 있게 되는데, 8괘는 ''의 구성에 상통하여 ''에는 8방이 있는 것을 가리킨다. 이 생성에서는 음양이 서로 화합하여 백천만의 다양한 사물이 성립된다는 것이다.

<논학문>에서는 우주 생성에 관해 "그러므로 삼재의 이치가 정해지고 오행의 수가 나왔으니 오행이란 무엇인가. 한울은 오행의 벼리가 되고 땅은 오행의 바탕이 되고 사람은 오행의 기운이 되었으니 천, , 인 삼재의 수를 여기서 볼 수 있느니라."고 하였다. 여기서 오행에 관해 <논학문>은 천, , 인의 삼재에 각기 오행을 적용한다.

, 음양, 오행은 중국 기철학의 전통에 속하는 것이지만, 최제우의 수심정기사상에서는 도교적 색채를 가미시키고 있다. 21자 주문에 대해 <논문학>에서 "금지(今至)라는 것은 도에 들어 처음으로 직에 접하게 됨을 안다는 것이요, 원위(願爲)라는 것은 청하여 비는 뜻이요, 대강(大降)이라는 것은 기화를 원하는 것이니라."고 했다.

동학의 기화는 도교적인 지기에 접하거나 감응하여 질병을 고치고 장생할 수 있고 지상신선이 될 수 있다는 선교적인 체험의 경지이다. 따라서 "밝고 밝은 한울님의 덕을 늘 생각하여 잊지 아니하면 '지기(至氣)'의 경지에 이르게 되어 지극한 성인에까지 이르게 되나니라."라는 것은 도덕적 수양과 수련을 통해 최고의 인간 목표에 도달할 수 있다는 논리가 된다. 역시 동학의 이상적 인간상은 군자인 동시에 도교적인 신선임을 알 수 있다.

<몽중노소문답가>의 다음과 같은 구절들이 도교적 신선사상과 도참설적인 운수론의 결합을 보여주고 있다.

 

"송송 가가(松松家家) 알았으되 이재궁궁 어찌 할꼬."

 

"십이(十二)제국 괴질운수 다시 개벽 아닐런가."

 

"하원갑 지내거든 상원갑 호시절에 만고 없는 무극대도 이 세상에 날 것이니."

 

"나도 또한 신선이라 이제 보고 언제 볼꼬."

 

한양도읍의 이조가 쇠운이 지극해서 멸망한다는 '이망(李亡)'의 도참에 속하는 것이다. 최제우는 도참사상에 관심이 깊었고 '동국참서(東國讖書)'라 해서 '도선비서''정감록'에 접한 흔적을 볼 수 있고 '진나라 녹도서(鹿圖書)'라 해서 중국의 참위설도 알고 있었던 것이다.

 

"나에게는 신령스러운 부험이 이으니 그 이름은 선악이며 그 모습이 태극이고, 또 그 모습이 弓弓이다. 나의 이 부험을 받아 사람들을 병드는데서 건져내며, 나의 주문을 받아서 사람들로 하여금 나를 위하게 한다면, '네가 또한 길이 살아서 덕을 천하에 펼 것이다'라고 말씀하시었다. 내가 또한 그 말씀에 감동하여 그 부험을 받아 글씨 써서 불사른 재를 물에 타 먹어 보니 몸이 윤택해지고 병이 나으매 바야흐로 곧 선약임을 알겠더라. 이것이 병에 사용됨에 이르러서는 어떤 사람에게는 나음이 있고, 어떤 사람에게는 나음이 없는 연고로, 그 까닭을 알 수 없었는데, 그 원인을 살펴보니, 참되고 또 참되어 하느님을 지극히 위하는 사람에게는 번번이 적중됨이 있고 도와 덕에 순응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일일이 효험이 없었다. 이것은 받는 사람의 정성과 공경이 아닌가?"

 

여기서 우선 영부와 선약이 동의어이며 태극과 궁궁(弓弓)이 동의어임을 알 수 있는데, 이러한 한자의 용례가 현대 한국어의 관습으로서는 이미 잊혀진 것들이어서 낯설게 여겨진 것이다. 영은 안에 있어서 만물을 생성화육하는 원리가 되며, ()는 밖에 있어서 만물을 생성변화시키는 자취가 되는 것이니 불상이나 만다라도 사실은 영부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선약이란 것이 몸의 병보다 마음의 병을 고치는데 사용되는 것임은 모든 것을 정성과 공경으로 돌리는데서 분명해진다.

문제는 '궁궁'에 있는데, 이것은 궁궁을을(弓弓乙乙)'의 준말로서 '()'이라는 글자를 해체한 파자이다. 최제우가 말하는 부적은 종이에 궁자와 을자를 이은 모양의 꾸불꾸불한 꼴을 그리고, 불에 사르고 남은 재를 물에 타서 마시는 것이니 궁궁은 여리고 부드러운 유선형이라는 뜻이 된다. 그뿐 아니라, 다만 형태를 지적하는 수준을 넘어서 굳센 것보다 여린 것을 높이는 사고방식 또한 드러나 있다고 해석할 수 있다. 궁궁 또는 궁을은 한국사상의 한 바탕을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최제우의 초기의 행위는 주술적 범위를 벗어나지 않았으며 또 다른 사람의 눈에도 그렇게 비쳤던 것이다. 최제우를 사람에 따라서는 최복술(崔福術) '복술이'라고 부르던 사실에서도 알 수 있다. 때문에 실록에는

 

"慶州東學罪人崔福術等事 有令當亶處之命矣."

 

"渠輩所稱崔先生 現名福術 冠名濟愚."

 

이처럼 최복술이라고 기록되어 있어서 최제우라는 이름보다도 최복술로 더 많이 알려져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 이유에서인지 동학사상에서는 선도만은 거의 무비판적이고 긍정적이다.

최제우가 말하는 유불선의 ''도 중국에서 유입된 도교가 아니고 그보다 앞선 조선 고유의 민간신앙인 신선사상이었던 것이다. 그것은 물론 무격사상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이능화도 거기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소경이 아니면서도 독경을 업으로 삼는 자를 경객 또는 경사라고 하는데 함북지방 속어로는 복술이라고 한다. 그들은 모두 경을 읽어 병을 고친다는 것이다. 때문에 최제우를 '복술이'로 보았다는 것은, 일반 사람에게는 그가 독경을 하는 사람 또는 주술을 하는 사람으로 보였음이 틀림없다.

강령체험을 통해 접기할 수 있는 대상으로서의 지기 역시 이 천주가 신앙체험을 통해 인간에게 그 효험을 나타낼 때 강령체험으로서의 기화를 가능하게 해주는 보편자이다. 이 점에서 동학신앙에서 천주와 지기는 이위일체(二位一體)이다. 인간이 동학신앙을 통해 시천주의 신앙 경지에 들어갔을 때 자신의 몸에 천주를 뫼고 강령주문을 통해 기화(氣化)의 체험이 있을 때에는 지기(至氣)가 몸의 중심이 된다.

동학에서 천주와 인간 자신을 귀신이라고까지 호칭하면서 귀신신앙을 수용했던 까닭은 당시의 사회상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이 무렵 헐버트가 "조선 사람들은 사회생활에서는 유자이고, 늙어 죽을 때는 불자이며, 곤경에 처하면 귀신 숭배자가 된다."고 말한 것처럼 귀신신앙에 젖어 있었기 때문이다. 동학에서 말하는 귀신은 천주와 인간의 중재자로서가 아니다. 그것은 왕 이하 양반 지배층이 천명에 의하여 백성을 다스린다는 봉건적 지배이념을 귀신관으로 거부한 것이다. 이런 점이 동학을 서민감정에 쉽게 영향을 미칠 수 있게 한 것으로 생각된다. 이 같이 최제우는 민간 신앙적 요소를 수용함으로써 신비주의적 계시종교를 표방하는 한편 유교적 합리주의 사상으로 그 결함을 보완해 나갔다. 그래서 동학은 재래의 민간신앙으로부터 발전한 민족적 대중종교로 정립될 수 있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구태여 귀신관에 유의했던 이유는 교단 지도층의 초세속적 종교 윤리와 대중의 주술사이에 타협이 필요했기 때문이며 그 방법으로 관념상의 중재자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동학의 개념 가운데 있는 주문과 궁을부에 장생, 항마, 요병, 강령 등의 신비적인 힘이 있는 것으로 보이는 점이다. 예를 들면

 

"이 부적을 받아서 사람의 질병을 고치고 이 주문을 받아 모든 사람으로 하여금 나를 위하게 하라. 그러면 너도 오래 살아서 천하에 덕을 펼 수 있을 것이다."<동경대전, 포덕문>

 

"삼칠자 주문을 그려서 세상 마귀를 내쳐버린다."

 

"병이 있는 자는 풍병, 학질을 막론하고 (주문의)암송을 귄하면 즉시 차도가 있었다."<일성록 중 '최제우공안'>

 

"잡병이 있는 자는 자 글씨를 태워 마시면 차도가 있었다."<일성록 중 '최제우공안'>

 

"주문을 외우고 칼춤을 추어 적을 막는다."<일성록 중 '최제우공안'>

 

등과 '지기금지 원위대강'이라는 강령주문이 있는 것을 들 수 있다.

무복의 신탁, 강신술, 각종의 행사 따위와 방불한 천신 또는 귀신의 강교와 그 제사이다. 예를 들면

 

"몸은 춥고 두려움에 떨었지만, 밖으로는 신령한 기운을 맞고 안으로는 내리는 가르침의 말씀이 있었다."<동경대전, 논학문>

 

"처음 배울 때 몸이 떨리고 신기가 통하더니 어느 날 천신이 가르침을 내려 말씀하시기를."<일성록 중 '최제우공안'>

 

수운은 주문을 마지막으로 확정지을 때 '하느님을 위한다(爲天主)'는 말을 피하고 '하느님을 무신다(侍天主)'는 말을 썼는데, 이 하느님을 모신다는 것도 민간신앙과 깊이 관련되어 있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의 무속에서 어떤 주술적인 방법으로 일정한 시간에만 신을 몸에 모시는 강신상태와 달리 보편적인 신인 하느님을 늘 정성스러운 마음으로 가까이 모신다는 의미이다. 따라서 수운이 들었다는 하느님의 말씀을 내용상으로 분석해 볼 때, 동학의 주문은 민간신앙적인 것으로부터 보다 높은 종교적인 차원으로 발전해 나간 자취를 엿볼 수 있다.

초기의 동학은 수운의 득도과정이나 그의 결정적인 종교적 체험(186045)에서나 무속에서 볼 수 있는 무당의 강신, 접신의 체험과 유사성을 갖고 있다. 그가 결정적인 종교적 체험에서 하느님으로부터 받았다는 영부나 주문도 민간신앙에서의 그것과 깊이 관련되어 있으며, '봉청수치성' 따위의 민간신앙의 형태와 다름이 없다. 그리고 수운의 사상 내지 신앙은 정감록적 풍수도참신앙의 영향을 받고 있으며, 또 도가의 신선사상과도 관련이 있다.

동학에서는 주문도 3단계로 암송하였다. 먼저 '입도주문'을 암송하고, 이어서 '강령주문', '평생주문'의 순으로 진행한다. 만약 영기가 없으면 명심정기하는 의미에서 '검가'를 암송한다.

 

"시호시호, 이내시호 / 부재래지 시호로다 / 만세일지 장부로다 / 오만년지 시호로다 / 용천검 드는 칼을 / 아니 쓰고 무엇하리."<용담유사, 검가>

 

그러면 이러한 검가를 부르면서 무엇을 했을까? 최제우는 주문을 외고 '강신'이 되면 목검을 들고 칼춤을 추기 시작하는데 한길()도 더 높이 뛰었다 내려왔다고 한다.

그런가 하면 동학에서는 도덕의 실천방법과 이를 승화시킨 '접영법' 및 의식이 구체적으로 규정되어 있다. 규장각 소장본 <인도행실> 전문을 보면, 유교에서 말하는 인도의 '삼강오상'을 항상 기본으로 하고, 입도주문인 '위천주원아정, 영세불망만사의'1만 번 암송한다. 그러면 천영이 되는 징후가 나타난다. 그 징후로서 머리가 아프고 구토증이 나면, 팔다리가 아파 온다고 한다.

그것이 접령의 시작이기 때문에 더욱 의관을 바로 하고 꿇어앉아 강령주문인 '영기접신, 원위대강'을 계속해서 암송한다. 그러면 황홀해지면서 몸이 떨려온다. 이 지경까지 이르면 정신을 가다듬고 평생주문 '시천주조화정, 영세불망만사지'(이것은 본주문이라고도 한다)를 암송하며 방에 영위를 설치하고, 청수 한 사발을 상위에 올려 놓고 동쪽을 향하여 네 번 절하며 제를 올리고 비로서 신도로서 등록시킨다.

이같이 입도의 관정은 무속에서 '신내림'을 하는 것과 유사하고 접신함으로써 '신병'의 증세를 제거할 수 있다는 것을 제시하고 있다,

 

4.동학과 전통사상

수운 최제우에 의해 창도된 동학은 사상적으로 유교,불교,도가혹은 도교와 많은 상관관계를 지니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음이 일반적인 견해이다. 이러한 생각은 유학,불교,도가 혹은 도교의 단순한 조합이나 결합이라는 부정적인 시각을 갖게 하였다. 하지만 동학을 단순하게 삼교의 외래사상의 종합으로 형성된 사상이라고 할수 없다. 동학은 한국의 고유한 사유체계와 고유성을 개진하였다.

첫째, 우리 민족은 오래전부터 하늘을 숭배하는 경천사상을 가지고 있었다. 동학의 신인 천주, 상제 혹은 한울님이 바로 이러한 경천사상의 또 다른 표현이다. 천주는 환단고기,삼국유사와 같은 우리 민족의 고서적에도 나타나는 용어이기 때문에 서양의 천주와는 다른 개념이다. 상제도 도교의 옥황상제와는 다른 우리 민족의 고유한 하늘의 또 다른 명칭이다. 그리고 한울님이라는 용어도 우리 조상들이 오래전부터 숭상한 하늘과 깊은 관련이 있다.

둘째,단군신화에 나타나는 개벽사상과 최제우의 다시 개벽사상은 내용 및 구조적인 측면에서 매우 유사하다. 또한 동학의 21자 주문은 단군신화에 나오는 환골탈태 수인 삼칠(:21)관념과 관련성이 있다. 그리고 이 삼칠관념은 북방 유목민에게 오래전부터 전래되어온 고유한 사유체계이다.

셋째, 한국 고유의 선교 즉 풍류도와 동학의 관련성이다. 풍류도는 고대에 있었던 한국 고유사상이다. 풍류도는 무교,무도,선도를 포함하고 있는 측면과 유교,불교,도가를 포함하고 있는 측면으로 나누어 분석할 수 있다.

이상 세가지 측면에서 동학의 고유성을 고찰해 볼 때 동학은 우리 민족이 오래전부터 가지고 있었던 사유체계의 결정체임을 알수 있다.

 

 

참고자료

배문규, 동학의 고유사상에 관한 고찰, 동학학보27, 2013

박경환, 동학과 유학사상, 동학학보5, 2003

김용환, 겨레얼의 형성과 전개, 겨레얼 살리기3, 2007

정규훈, 한국의 신종교, 서광사, 2001

정혜정, 불교를 통해본 동학의 생명적 사유와 만물일체, 동학학보16, 2008